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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열린 ‘희망 고문 게임’

경기도의 산하 공공기관 이전에 담긴 불편한 공정의 가치들

송영한 기자 | 입력 : 2021/05/28 [10:42]

#1

영화 ‘쇼생크 탈출’은 희망을 주제로 한 영화다. 

 

영화의 두 주인공인 앤디와 레드는 각기 다른 방법으로 희망을 찾는다. 

 

“희망은 좋은 것이며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라는 명언을 남긴 앤디는 교도소장이 자신의 무죄를 증명해 줄 증인을 사살하자 무죄 입증이라는 제도에 대한 희망을 버리고 탈옥이라는 제3의 길을 선택해 성공한다.

 

반면 레드는 자신의 희망을 이루기 위해 가석방 제도를 이용해 자유를 찾고자 하지만, 위원회는 번번이 이를 기각한다. 그러자 그는 위원들 앞에서 “나는 이미 감옥에 적응했으니, 더는 희망 고문을 하지 말라”라고 말했는데도 되레 가석방이 결정된다. 이들이 스스로 그 희망 고문의 굴레에서 탈출하자 또 다른 방법으로 희망이 성취됐다는 것은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쇼생크 탈출은 1995년 아카데미 시상식 7개 부분에서 노미네이트되었지만, 단 한 개의 상도 받지 못했다. 개봉 당시 흥행 성적도 보잘것없었다. 대신 해외 흥행과 재개봉을 통해 큰 흥행을 이룰 수 있었으며 비디오와 DVD와 같은 2차 판권 시장을 통해 수익도 내고 사랑받는 영화로 자리매김했다.

 

#2

경기도가 약속한 산하 공공기관 주사무소 기초단체 이전이 27일 제3차 공모 선정지 발표를 끝으로 마감됐다. 

 

26일 프레젠테이션을 하고 나서 만 하루 만에 발표다. 이재명 지사 스타일대로 속전속결 함으로서 공모 과정에서 으레 불거지게 마련인 뒷말을 차단하고자 했을 것이고 그 결과 어느 지역의 개발사업 공모처럼 1위와 2위가 바뀌는 이변과 파란도 없었다.

 

그러나 모든 잔치가 그렇듯 잔치 끝에는 뒷말이 무성하다. '새로운 경기 공정한 세상'이라는 슬로건을 내건 경기도가 지역 균형 발전을 꾀한다는 명분으로 시작한 이번 공모도 예외는 아니어서, 이미 복수의 기관을 유치한 지역이 또 다른 기관의 유치를 신청해 공평과 균형 발전이라는 명분을 퇴색시켰으며, 단 한발의 화살로 알짜배기 과녁을 명중시킨 주몽 뺨치는 ‘원샷 원킬’의 신공을 발휘한 지역도 있었다. 

 

또한, 알밤을 주우려 나섰으나 누구나 짐작이 가능한 저간의 불편한 사정으로 도토리를 줍는 것으로 만족해야만 하는 지역도 있었으며, 기관 내부의 반대 기류에 따라 후보지가 뒤바뀌었다는 후문도 있다. 그러나 후문은 후문일 뿐이다.

 

 ‘오심도 경기의 일부’ 라는 말은 차치하고라도, 체급 제한이 없는 공개 경쟁이라는 방법이 원래 상대를 쓰러트리지 않으면 내가 쓰러져야 하는 정글의 법칙이 적용되는 링이거늘 신사도가 가당키나 한 일인가?

 

이미 손에 떡을 쥔 지역에는 축하를 보내면서도 과연 이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무한 경쟁 구도 속에 치러진 이번 공모의 과정이 정당했느냐 하는 의문은 여전히 남아있다.

 

경기도에서 시행하는 기초단체 행정 평가는 31개 시ㆍ군을 세 개의 그룹으로 나눠서 시행한다. 일부 종목의 체육대회도 마찬가지다. 인구 100만 이상의 광역시에 버금가는 지역과 인구 5만이 안 돼서 아직도 시(市)라는 계급장(?)을 달지 못하는 지역을 한 경기장에 넣고 경쟁시키는 것이 공정하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이번 공모 과정에서는 이런 배려 같은 것은 아예 없었다. 계획된 들러리인지는 모르겠으나 심지어 1~2차에서 기관 유치를 확정한 지역들까지 또다시 유치전에 뛰어드는 탐욕성(?)까지 방치하지 않았던가?

 

경기도는 2019년 경기관광공사, 경기문화재단, 경기도평생교육진흥원 등 세 개의 공공기관을 고양시로 이전하기로 결정했다. 이 과정에서 다른 지역의 볼멘소리가 터지자 지난해 2차 공모를 통해 경기교통공사ㆍ경기도일자리재단ㆍ경기도시장상권진흥원ㆍ경기환경에너지진흥원ㆍ경기도사회서비스원의 주사무소를 6개 지역으로 이전을 확정했다. 

 

그리고 이번에 3차 공모에서 경기연구원ㆍ경기도여성가족재단ㆍ경기복지재단ㆍ경기도농수산진흥원ㆍ경기신용보증재단ㆍ경기도경제과학진흥원ㆍ경기주택도시공사 등 7곳의 주사무소 이전을 확정하기에 이르렀다.

 

#3

해당 지역이 원했던지 원치 않았든지 간에 경기도 31개 시군 가운데 떡을 받지 못한 곳은 18개 시ㆍ군이다. 그 가운데 단연 주목되는 곳은 연천군(3곳 신청)과 가평군(4곳 신청) 그리고 포천시(3곳 신청) 등이다. 이들 지역은 모두 1차 심사는 통과했지만, 최종 심사에서는 들러리로 만족해야 했다. 원샷 원킬의 비법을 터득하지 못했는지, 연천군은 3위 두 개와 4위 한 개 기관, 가평군은 2위 세 개와 5위 한 개 기관, 포천시는 4위 두 개와 6위 한 개 기관이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았다. 

 

이들 지역이야말로 공모 기간 내내 ‘희망 고문’에 시달린 지역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공교롭게도 이들 지역의 국회의원들이 야당이어서 의원님 찬스조차 쓰지 못했겠지만, 이들 지역이 경기도가 명분으로 내세운 지역 균형 발전이 필요 없는 지역이거나 각종 규제에서 자유로운 지역이 아니라는 것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사실이다. 

 

경기도도 이들 지역의 허탈한 분위기를 감지했는지 “공모에 탈락한 시․군에 대해서도 지역 균형 발전 정책의 취지에 부합하도록 기반시설 조성 등, 특단의 대책을 마련할 계획이다.”라고 선수를 치고 나왔다.

 

경기도는 “또다시 제4차 희망 고문이 시작됐다.”라는 냉소적이고 자조적인 민심이 확산되기 전에 신속한 후속 조치를 통해 이들의 박탈감을 위로해야 할 것이다. 희망을 포기함으로 희망을 성취하는 것은 ‘쇼생크 탈출’ 같은 영화에서나 가능한 일이지 일상적인 것은 아니다.

 

작금의 집권당에 대한 민심의 이반은 집권당이 야당보다 더 부패하고 더 불공정해서 일어나는 현상이 아니다. 오로지 상대보다 깨끗한 척, 공정한 척해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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